<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5회 민주가 일류 사기꾼이 되었다구?

 

세상의 모든 싸움이 이처럼 어이없는 싸움이라면 이 세상은 과연 이상적인 세계일까? 사람 사는 맛이 없는, 너무 단순하고 지루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제 그런 내가 싫을 때가 있다. 그런 무거운 의식 속에 갇혀온 것이 후회스럽다. 요즘은 가벼워지고 싶다.

 

대구에서 공장을 태우고 서울로 올라와 셋방살이를 할 때다. 그때 나는 리어카 배추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옆방에 세 들어 사는 술집 아가씨가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무척 따랐다. 그녀도 양심을 지키느라 직장 생활로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술집에 나간다고 했다. 그녀와 처음 안면을 틀 때 내게 한 첫마디는 “양심이 밥 먹여 줘요?”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던 것이다.
“정비공장에서 광내준 차 노임을 받을 때였어. 공장 사장과 구내식당에서 계산을 보다가 액수 차이로 따질 일이 생겼지. 나는 25만원만 받으면 되는데도 사장은 28만원을 주는 게 맞다며 고집을 부렸어. 그때 옆자리에서 차를 마시던 신사가 끼어들더군. 그는 사장의 친구로 그쪽 편을 들었어. 여보시오. 우리 조 사장은 누구와 싸운 적이 없소. 신용으로 따지자면 귀신도 당해내지 못할 사람요. 아마 댁에서 착각했을 거요. 그러자 사장이 친구를 나무랐어. 이 사람아, 확실히 알고나 끼어들어. 지금 더 달라 덜 주겠다 싸움이 아니라, 더 주겠다 덜 받겠다 싸움이란 말야. 그러자 사장 친구는 민망한지 자리를 뜨더군. 참으로 아름다운 싸움이었어.”

 

세상의 모든 싸움이 이처럼 어이없는 싸움이라면 이 세상은 과연 이상적인 세계일까? 사람 사는 맛이 없는, 너무 단순하고 지루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제 그런 내가 싫을 때가 있다. 그런 무거운 의식 속에 갇혀온 것이 후회스럽다. 요즘은 가벼워지고 싶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내 무거운 하중이 이제는 지겹고 힘들다. 가볍고 환한 세계를 지향하고 싶다. 떠들고, 노래 부르고, 사기 치고 싶다.
착한 내가 지겹다!
남을 속이고 싶다!
남을 속이는 재미로 내 철학을 만들고, 남을 속이는 기술로 내 종교를 만들자!
이제는 더 주겠다 덜 받겠다가 아니라, 덜 주겠다 더 받겠다고 떼쓰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차라리 불태운 승용차들을 변상해주지 않고 그냥 서울로 도망칠 걸. 양심을 지켜서 얻은 건 공사판에서 천대받으며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 뿐이었다. 친척들도 반기지 않았다.
“사기꾼이 젤 부러워요. 존경스럽고요. 내가 이제 터득한 건 그거에요. 그게 진리죠.”
민주의 말에 나는 토를 달아줬다.
“우린 지금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어. 사기를 생존전략이라며 눈감아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구.”

“내가 사기꾼이 돼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죠. 인생을 장난으로 보거든요. 장난치는 기술을 익히는 일인데, 그 기술이 바로 사기술이죠.”
나는 정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새롭게 느껴졌다. 저 여자가 정말 술집 여자란 말인가.
“함께 나가요. 내가 술 한 잔 살 테니.”
민주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술을 얻어 마시는 게 민망해서 사양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냈다.
민주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사랑한 남자한테 모든 걸 잃었다고 했다.
“어찌 생각하면 그 인간이 고마워요. 일찍 나를 개명시켰으니까요.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여요.”
민주는 일주일 후에 아무 말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나를 술집으로 데려가던 날,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오라버니가 나처럼 사기란 단어에서 매력이 느껴질 때쯤 한번 찾아올게요.”
민주가 예언한 대로 내가 사기란 단어에서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요즈음이다. 민주가 27살에 터득한 진리를 나는 50에 가까워서야 깨달은 셈이다. 아름다운 여자의 몸매에서처럼, 나는 이제야 사기란 단어가 신비스럽고, 그 단어에서 섹스감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진실이란 단어에서 섹스감정이 느껴졌지만, 이제는 진실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민주가 보고 싶다. 지금 얼마나 노회한 사기꾼이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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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옥 분위기가 초여름 날씨만큼이나 싱싱하다. 홀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고 황 사장의 목소리에도 생기가 넘친다. 그는 오늘을 사실상의 개업 날짜로 정한 것이다. 능수엄마와 주방장 범도가 자기네 식구가 됐으니 꿀릴 게 없다는 자신감이 들자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이제 새 세상을 맞는 기분이요. 개업을 잘못한 탓에 한번 홍역을 치렀지만 모두가 내 실수요. 내가 경험이 없어서 그 주방장놈 사기에 넘어가는 바람에 휘청했던 거요. 식당은 개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아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탄탄한 기반을 다져놨으니 희망이 넘칠 뿐이오. 우리 대승옥이 이 근처에서는 젤 거창한 업소로 평이 났소. 여러분도 긍지를 갖도록 해요. 모두 알겠지만, 오늘 한국에서 알아주는 전문가 두 분이 우리 대승옥에 입사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춘천옥 하면 한국이 알아주는 업손데, 거기서 책임자로 명성을 날려온 능수엄마와 한국 일류 주방장으로 소문난 김범도 요리사가 명예로운 대승옥 주방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연조나 명성으로도 두 분이 주방과 홀의 책임을 맡을 수밖에 없으니 다른 직원들은 잘 협조해서 대승옥을 더욱 빛내주기 바랍니다. 그럼 두 분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힘찬 박수를 보내주세요.”
능수엄마와 범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박수소리가 계속된다. 일부러 계획된 행사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에 대한 예우가 상식을 넘는다. 꽃다발이 안겨지고, 특별히 주문했다는 제복이 증정된다. 그리고 장사가 끝난 후에는 두 직원의 입사를 축하하는 성대한 회식이 열린다. 황 사장은 두 책임자의 심난한 마음을 풀어줄 양으로 바싹 다가앉아 연방 흥을 돋아주고 말을 시킨다.
능수엄마는 점점 기분이 고조된다. 어찌 생각하면 춘천옥을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춘천옥에서는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 책임감의 중압에 시달려야 했다. 잘한다는 그 인정에 흠을 내지 않으려고 남보다 두세 배 더 뛰어야 했는데, 그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분이 가뿐하다. 또 애정과 질투의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나른한 휴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범도 역시 마찬가지다. 별로 인정받지 못한 춘천옥보다는 지금처럼 받들어주는 대승옥에서 더 친밀감이 느껴진다. 황 사장이 보수도 배로 주고 오래 있으면 분점을 차려주겠다고 약조했으니 희망도 부푼 상태다. 다만 미스 강과 떨어져 있는 게 괴롭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능수엄마가 무슨 수로든 미스 강을 데려온다고 장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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