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 작가가 들여다본 ‘어부의 속사정’

강 속 한 번 구경 못한 ‘57억 로봇물고기’
일제 갑오개혁 때 들여온 외래종 ‘떡붕어’
4대강 그 후… ‘녹조·큰빗이끼벌레’ 창궐

“10년 후 남한강은 어떨까?”

 

조광희 작가는 양평 일대 어부와의 만남으로 사람의 손에 가려 보지 못했던 남한강의 실체를 들여다보았다. 변화하고 있는 남한강의 환경생태와 사라져가는 어부의 생생한 이야기를 신화적, 실용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연결을 통해 공생의 방향을 질문하고 있다.

“남한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걱정 없이 사는 게 우리들 소망이야. 배고픈 시절에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고, 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주었거든.” 남한강의 어부는 예전처럼 물고기가 막힘없이 오르내리고, 댐 위로 강치가 올라와 노니는 강을 꿈꾸고 있었다. 강의 생태계는 곧 어부의 몸이었다.

순수 토종붕어는 일본이 원산인 떡붕어에 쫓겨 찾기 힘들다. 떡붕어는 1970년대 초 양식과 자원조성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부들은 19세기 말 동학농민혁명 때 일제가 창덕궁 연못에 풀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무려 70년 이상의 격차가 난다. 일제의 잔악무도하고 치밀한 민족말살정책을 상기하면 떡붕어는 어부들이 선대로부터 구전으로 전해들은 것처럼, 20세기 이전에 이미 우리 강에서 토종붕어의 알과 치어를 먹어치웠던 것이다.

경기문화재단의 지역예술 활동지원 프로젝트 ‘어부의 속사정’이 전시 중인 아신갤러리. 지난 6일 만난 조광희(48) 작가는 “어부님들이 상처를 많이 입으셨다”고 했다. 그는 남한강에서 조업하는 어부들과 8개월간 인터뷰를 하면서 어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부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어부의 생생한 목소리와 영상물, 회화 등이 작업 결과물로 전시됐다.

조광희 작가는 기차를 개조해 만든 아신갤러리 외벽을 대형 빌보드 광고판처럼 활용해 작품을 전시했다.

큰빗이끼벌레와 블루길을 잡는 어부들의 모습, 바지선에서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 장면, 목선에 올라 소박한 일상의 미소로 그물을 걷어 올리는 부부, 4대강 수질검사용으로 57억원을 들여 만들었지만 강 속 구경 한번 못한 로봇물고기 등이 작품으로 나왔다. 간결함과 굵은 선이 뿜어내는 힘찬 표현력이 마치 1980년대 미술을 마주하는 듯하다. 그림 하단에는 저마다 문구가 쓰여 있다. 작품을 설명한다기보다는 그림 속 어부들이 실제 작가에게 한 말이다. 이를테면 “블루길, 큰빗이끼벌레가 많아요.”, “올해는 물살이 더 줄어서 녹조와 청태가 심해졌어.”, “우리는 하늘만 보고 살아”, “친절한 홍씨, 10년 후 남한강은 어떨까?”와 같은 식이다.

갤러리 맨 안쪽에는 설치작품이 전시됐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담은 영상과 함께 조광희가 인터뷰한 어부들의 목소리가 오디오를 통해 들린다. 전시장의 천장과 벽면에는 실제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이 얼기설기 걸려있고, 그물 여기저기에 붙은 관람객들이 남한강에 바라는 글과 그림들은 작품의 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지난 2일 전시 개막식에는 어부 여러 명이 직접 전시장을 찾았다. 아신역 언덕에 오르면 보이는 남한강의 지점에서 어부들의 조업이 가장 많았다는 게 조광희 작가의 설명이다. 어부들은 아신갤러리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았다. 조광희 작가가 아신갤러리를 전시장으로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광희는 지난해 경기문화재단이 지역예술특성화사업으로 팔당권 두물머리 일대에서 진행한 ‘노마딕 경기아트페스타 2015’의 첫 사업인 ‘실신(實神) 프로젝트 남·양·광·하’에 참여했다. 정약용 생가 터를 시작으로 실학의 배경지로서 하나의 물줄기에 맞닿아있는 남양주, 양평, 광주, 하남 4개 지역 특유의 문화를 신화적 요소를 결합해 예술로 풀어낸 아카이브 전시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양일고 학생 10여명과 함께 애니메이션 팀을 결성해 두물머리를 중심으로 오래된 신화, 인간들의 삶의 실학적 서사를 모았다.

아신갤러리에 전시된 조광희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 화면에 출렁이는 남한강의 풍경이 보이고, 전시장 벽면과 천장에 어부들이 실제 사용하는 그물이 걸렸다. 스피커에서는 조광희 작가가 인터뷰한 어부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구온난화라는 기후변화에다 물고기의 이동을 막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보’는 생태계 단절을 불러왔다. 물이 갇히고 녹조, 세균 등 먹이가 많아지면서 창궐하기 시작한 큰빗이끼벌레도 2년 만에 사라지고 있다(큰빗이끼벌레는 2∼3급수에서 사는 것으로 추정). 그 뒤를 이어 환경부 수 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남한강의 바닥을 뒤덮을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어부의 속사정’은 진정한 의미로 남한강과의 ‘공생 방법 찾기’이며 ‘생태’와 ‘환경’이 주제로써 지금 당면한 문제를 바로 보자는 ‘어부 <남한강>의 외침’이다. 자연을 인간이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다시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난다. 조광희의 작품은 “강이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건강해야지”라고 말하는 어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작가가 걸어온 길)

세종대 회화과(1992)와 독일 카셀국립예술대학 비주얼커뮤니케이션학과 트럭필름을 전공(2005)했다.

아르코미술관의 노마딕 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2011)에 참여해 2014년 ‘남극이야기’(B.CUT 캐주얼 갤러리), ‘우주(宇공간과 宙시간)의 무한 속, 내 존재 티끌의 무대’(상DMC암홍보관·서대문자연사박물관)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바깥미술전(2016·대성리), ‘알로호모라, 아파레시움! 미아리 더 텍사스’(2015·성북구 하월곡동 88-290), ‘2014 잡화점 Gneral Store Family Name&Given Name전’(2014·통의동보안여관, 서울), 우등불 공연예술놀이터 “예, 아니오!”(2016·성공회대, 서울), 제1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폐막식 퍼포먼스(2011·상상마당, 서울),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오픈 퍼포먼스(2010·태화강, 울산) 등 다수의 단체전과 프로젝트, 퍼포먼스, 작품상영을 했다.

제1회 에코다큐어워즈(2012·백령아트센터, 추천) 대상(환경부장관상), Children earth vision award, 19th Global Environmental Film Festival(2010·일본)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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