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누비기 Ⅱ-영춘 이복재 경기도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고개이름인 패현(敗峴), 그 고개가 있는 마을인 패현리(敗峴里), 또 다른 고개이름인 구질현(仇叱峴), 산 이름인 고라산(古羅山)은 모두 지금은 쓰이고 있지 않아 사라진 지명(地名)이다.

패현(敗峴)을 의역하면 ‘패한 고개’이다. 「하동정씨익위공파족보」(2010년 간행) 횡간보 13쪽 정응린(鄭應麟)기사에 보면 ‘同年(壬辰)五月八日殉節砥平古羅山下敗峴里敗峴自敗峴之名自此始矣〔정응린은 1592년(임진) 5월8일 지평 고라산 아래 패현리에서 순절하였는데, 패현이란 이름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적혀있다. 이는 1725년(영조1) 10월21일(乙酉)의 「승정원일기」 기사에서 인용하여 적은 것이다.

패현리는 ‘패현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보면 되며, 「승정원일기」의 이 기사는 다음과 같다.

‘-앞부분 생략-(정응린이) 힘이 다하고 화살도 떨어져 마침내 적의 탄환에 맞아 죽었으니, 고라산 패현(敗峴)의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며 지금까지도 그 고개를 지나는 자는 그 이름을 생각하고 그 자취를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이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입니다.-이하 생략-’

구질현의 구질(仇叱)을 의역하면 ‘원망하며 꾸짖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평현 편 산천(山川) 조에 ‘구질현, 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라고 적혀있다. 고라산은 지금의 고래산(高來山)을 그렇게 적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지명들 중 구질현은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적혀있으니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이전에 불리던 고개이름으로 그 이후 다른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후 18세기에 간행된 읍지류인 「지평읍지」와 여지도·광여도·지승·해동지도 등 고지도에는 구존치(九存峙)로 적혀있다. 그러다가 1911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구둔치(九屯峙)로 적혀있고, 지금까지 고개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구질현이 구존치로 불리다가 구둔치로 바꿔 불리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왜 원망하며 꾸짖는다는 의미의 구질현이라 했다가 구존치가 되었으며 지금은 구둔치로 불리고 있는지는 전설조차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구둔마을로 인해 구둔치가 되었거나 구둔치가 있어 구둔마을이 된 것 정도의 관련성은 추론이 가능하다.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10대로 중 3대로로 명명된 평해로(平海路, 공식명칭은 ‘東南至平海三大路’), 즉 관동대로(關東大路,이하 ‘관동대로’라 함) 구둔치 옛길은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구둔마을에서 양동면 매월리 월은마을을 넘는 고개로써 이 길로 서울에서 출발하면 첫 번째로 넘게 되는 큰 고개이다. 지금도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과거 사임당이 강릉 오죽헌에 노모를 남겨두고 남편 이원수가 있는 한양으로 가기 위해 구둔치 고개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나갔을 장소임은 물론이다. 한말인 1907년에는 양동면일원에 주둔하고 있던 이인영 의병장이 이끈 13도창의대진소결성 직전단계의 의병 5천여 명을 토벌하려는 일본군과 이 고개를 지키고 있던 150여명의 의병들이 격전을 벌인 곳임은 물론 숱한 선인들의 애환과 체취가 서려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성 있는 산림 내 옛길로서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국민들의 체험·교육의 장으로도 활용 가능하여 2015년에 산림청이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 예정 공고한 고개이기도 하다.

고래산은 앞의 고지도 모두에 고달산(高達山)으로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었던 신라시대에 창건된 대사찰인 고달사(高達寺)에서 연유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고달사지(高達寺趾)에는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6),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보물7), 고달사지석불좌(보물10), 고달사지부도(국보4) 등 불교 관련 유적이 많다.

고달사뒷산과 고래산은 하나의 같은 산줄기로써 높이가 543m이며, 고려시대에 고려장을 한 곳이어서 고려산으로 부르다가 이렇게 불러졌다는 설도 있고, 이 산 서쪽의 대평리에서 바라보면 고래등줄기 모양이어서라는 일설도 있다. 양평군 지평면 대평리와 여주시 북내면(北內面)의 경계가 되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전망이 확 트인 산이다.

지평면 지평리와 망미리의 경계가 되는 망미산(望美山;일명 배미산)과 고래산은 한 줄기로 연결된 산으로 두 산의 경계가 되는 안부(鞍部)에는 고개가 하나있는데 절운(節雲)고개이다. 지평면 곡수리에 있는 곡수장(曲水場)은 조선시대이후 장시가 발달하면서 제법 알려진 장터로 40~50년 전만해도 장꾼들로 북적대던 곳이다. 관동대로를 이용하던 경기동부내륙과 강원영서 등 주변지역사람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곡수장을 갈 때 주로 이용하던 길로 지평면 망미리 절운(節雲;저른 또는 其論)마을과 대평리 배잔(盃盞)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배잔마을은 대평리의 중심이 되는 아늑한 마을로 이 마을 가운데 있는 야트막한 산의 모양이 술잔과 같이 생겼고, 옥녀배형(玉女盃形), 즉 옥녀가 옥잔을 드리는 형국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래산을 오르려면 배잔마을을 기점을 삼아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