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시론> 용은성 편집국장

토요일의 삶을 잃어버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양평 청소년 수백 명이 양평역 광장에 모여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학생들이 ‘불금’을 잊고 광장을 찾은 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시국과,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나라를 걱정하는 청소년들이 이 시대의 주인이다.

어른들은 자녀의 물음에 더 머뭇거려선 안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 건인지 생각하고 결단해야 한다. 조직의 리더나 지도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이가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채 암중모색에 분주한 이가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모른다”, “기억이 안난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최순실과 엮이는 게 싫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비겁한 사람이다. 누구는 그를 지칭해 ‘법률 미꾸라지’라고 맹비난했다.

그나마 잘못을 뉘우치고 벌을 받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끝까지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이러저러한 계산을 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누가 더 나쁜 걸까. 이훈석 세미원 대표이사가 4개월째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던 중 지난달 27일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편지에는 감사를 벌이고 있는 감사원과, 본지, 시민단체를 강도 높게 성토하고 있다. 감사원은 위험한 결정을 한 피감기관 대표이사의 행동에 감사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경찰은 그의 전화기가 서울 중구에서 꺼진 것을 확인하고 서울지방경찰청과 공조수사를 벌였고, 그의 선산이 있는 충남 일대에는 전단지가 뿌려졌다. 잠적 이틀 만에 그의 전화기는 새벽 2시40분 대전시 유성구에서 한번 켜졌다고 다시 꺼졌다. 이후 이 대표의 지인으로부터 ‘이 대표와 같이 있으니 안심하라”는 전화가 세미원 사무실로 걸려왔고, 이 대표의 편지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직원들에게 ‘이 대표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다는 게 세미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를 종합하면 경찰도 이미 그의 소재를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은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몰랐다”며 ‘무능한 바보’ 코스프레에 들어갔다. 세미원은 이훈석 대표의 위험한 행동으로 감사 중단의 결과를 받았다. 그러나 참모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면 물러날 때를 알리는 것이다. “저는 더 이상 대통령 옆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저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지 당신의 봉사자가 아닙니다.” 이렇게 양심의 외침을 해야 공직의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훈석 대표의 참모가 누구이든 자신이 앉은 자리, 자신이 가진 것을 던져야 한다. 크든 작든 이 대표의 세미원 예산 회계 문란에 힘을 보탰던, 적어도 방조했던 과오를 군민 앞에 고백해야 한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부정하는 건 힘든 일이다. 김기춘의 예가 그렇고, 이훈석 대표가 그렇다. 나이 80을 바라보는 그 치열했던 생존 경쟁의 시대는 우선 내가 입고 먹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 시대 청소년들은 올곧은 마음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해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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