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5살, 작은 딸이 2살쯤 용이는 한 살도 채 안된 나이로 가족이 되었다. 새들은 나이를 먹어도 늘 같은 모습이라 겉모습만으론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 들어 먼저 떠난 작은 새들도 성조(成鳥) 모습을 갖춘 후엔 움직임이 둔해지고 잠자는 시간이 늘면서 마지막 세상을 맞이할 때까지 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끔 용이의 회색 털에 흰털이 보이면 ‘얘가 나이가 들어서 털이 사람 머리 희어지듯이 세나?’ 하는 생각에 같이 한 세월을 더듬어보게 된다.

이제 큰딸은 21살, 작은 딸은 18살이다. 용이가 부쩍 뭔가에 집착한다고 느낀 지 몇 달이 되어간다. 생각해보니 1년은 돼가는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싶어 장난감을 넣어 주기도 하고 부리갈이로 쓸 나뭇가지를 새롭게 넣어주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틈만 나면 고양이 화장실 통으로 가서 모래를 발로 흩뿌리며 열심히 땅 파는 행동을 하거나 수시로 나오겠다고 문틀에 달라붙어 뜯어대는 통에 문틀도, 고양이 화장실도 온전하기 힘들었다. 냥이들도 용이가 자기 화장실에 들어가 모래를 휘저으며 행패부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튕겨 나온 모래에 얼굴을 맞기도 했다.

자주 못 놀아줘서 그런가 싶어 손에 얹어 놓으면 애써 까먹은 먹이를 정신없이 내게 도로 뱉어 준다. 앵무새들은 좋아하는 대상에게 자기가 먹은 것을 게워주며 애정 표현을 한다. 앵무새는 상하관계보다 평등관계로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나름의 애정표시를 해주려니 했다. 그런데 그 증세가 날로 심해져 위장이 다 비겠다 싶을 정도로 하루에도 몇 번씩 게워준다. 그러더니 요 며칠은 설사 증세가 심해졌다. 사료에 문제가 있나 싶어 새로 주문하고 설사를 멈추는 약품까지 함께 주문해 먹이기 시작했다. 가끔 과일을 많이 먹거나 습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변이 묽어 지기도 하는데 그 정도를 넘어 증세가 심하다 싶었다. 그동안 용이 건강에 방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컹했다.

새들이나 동물은 사람에 비해 상태변화가 빠른 편인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걱정이 정점을 찍던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밤새 별 일 없나 새장부터 살폈다. 용이가 집에서 웅크리고 나오질 않는다. 새장 안 나무상자 집은 남편이 용이가 탐내는 고양이 화장실 축소판 모양으로 만들어주고, 두 번에 걸쳐 취향에 맞게 리모델링까지 한 거처다. 그 안에 햄스터용 나무 톱밥과 토끼용 풀을 잔뜩 넣어주고부터는 상자집에 들어가 뜯고 발로 파며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그런 집속에서 좋아하는 땅콩도 마다하고 웅크리고 있는데 배 부분에 하얀 무엇이 보였다.

세상에! 용이가 알을? 용이가 암컷! 그래서 그렇게 아파했구나… ‘용’이 종자는 암수가 똑같이 생겼는데 남성적 모습이라는 생각에 이름도 그리 지어 받았고 말을 잘하니 수컷일 거라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아빠 목소리로 말하니 진짜 성별과 상관없이 그냥 수컷이라도 단정 짓고 있었다. 참 오랜 기간 동안.

“용이가 여자였어?”

가족들은 용이가 알 낳았다는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마냥 개구쟁이 남자애처럼 대했는데 어느덧 용이도 알을 낳는 성조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성 지극한. 자기 알을 저리도 열심히 품는 어른 앵무새인데 말이다. 이제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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